[2020년 12월 31일]

2021. 1. 1. 00:03회고/개발자 되는 길

728x90

올해 나에게 있어 가장 큰 이벤트는 퇴사였다. 이직할 곳도 없이 감히 나오냐는 조언들을 끝내 뒤로한 채 수입이 없지만 마음은 편한(하지만 편치만은 않은?) 백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살아오면서 오래동안 한 분야의 공부나 경험을 한 적이 없는 게 아쉬워 하나를 찾으면 끝까지 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2016년부터 인턴, 계약직, 포함해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하찮게 된 몸뚱아리를 예전의 것으로 되돌리는 변화를 주고 싶었다. 

 

퇴사를 기점으로 2020년의 마감일인 12월 31일 오늘까지 월말 결산형식으로 회고를 해볼까. 

 

5월. 드디어 해방이다. 무엇을 해야할까? 일단 돈에 꽂혔다.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돈이 몰리는 여의도로 진출해야겠다. 증권맨, 시시각각 변하는 그래프들과 빠지지 않는 회식. 굴을 캐려면 바다에 들어가야 되지 않는가. 돈이 오가는 곳에 가면 없던 자산도 점점 증식할거란 막연한 기대도 든다. 경영학 전공을 살려서 자격증 시험 공부하면서 입장문을 두드려보자.

파생상품, 그 상품들을 만들고 거래하는 기관, 세율, 세법... 어렵지 않은 시험이었는데 자전거 종주도 다녀오고 활자들만 보고 있자니 힘들었다. 결국 1회독도 하지 못했다. 시험은 코로나로 인해 전날까지 취소/환불을 받고 있었고 쥐구멍을 찾은 생쥐처럼 환불하기 클릭을 눌렸다. 그래도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기위한 노력이었기에 투자한 한 달에 대한 페이백이 되었다.

 

6월. 회사 다니면서 앱 만들어서 창업해야지...대표돼야지... 야근하면서 속으로 수십번은 외쳤다. 모든 직장인이 꾸는 꿈을 추상적인 희망으로 만들어 그렇게 될 수 있을거라 믿고 살았다. 전 회사가 IT업계 스타트업이라 프로그래밍 언어 스터디를 몇 번 했었고 서비스 기획/운영 담당이었던 난 개발팀과 회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는데 약간 살을 붙여서 애플 맥북을 들고 슬리퍼를 끌고 다니며 쿨하게 일하는 모습이 형식상에 얽매이지 않아 자유로워 보였고(우린 모두 도비일 뿐이지만),  서비스에 바로바로 반영이 되는 업무 특성이 새로운 앱 업데이트를 할때면 모든 주목이 개발팀, 서버팀에 쏠리는 모습이 중압감도 크겠지만 서비스에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서두가 길어졌지만, 결론은 개발을 배우고 싶었다. 몇몇 회사 동료에게도 이러한 뜻을 내비치기도 했었다. 개발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를 더 찾으면 찾을수록 결과에 맞춘 정당화가 되기에 나는 코딩으로 서비스를 개선시키는 일이 안되는 문제가 있으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내 성향에 맞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만든 앱으로 회사까지 세울 수 있다는 조금은 큰 꿈을 가졌기 때문에 첫 발을 들이게 되었다. 사실 학부생 때 컴공과 복전을 고민하다가 중국어가 배우고 싶어 중국 교환학생을 선택한 이력이 있기도 하다.

어머니와 속초 여행을 다녀와서 곧바로 학원을 등록했다. 1년이란 시간을 들여 제대로 배워 내 무기로 만든 다음 어디에서든 써먹고 싶어 국비가 아닌 Java 백엔드 실무강좌 단과반을 등록했다. 그렇게 1년이란 시간과, 일시불로 긁어본 가장 큰 금액을 학원에 지불했다.

 

7월. 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Java는 전 회사에서 스터디를 해봐서 그런지 추상화, 다형성... 빼곤 재밌었다. JSP는 Spring을 편하게 배우기 위한 강좌라고 해서 들었는데 그저 본 게임인 Spring을 빨리 배우고 싶었다. 날씨가 많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8월에 정보처리기사 필기가 있어서 야금야금 준비하기 시작했다. 학원을 다니지만 따로 Java 공부를 더하고 싶어 스터디에 들어갔다. 알고리즘이 왜 필요한지 뭔지 잘 모르고 들어갔다가 대기업 입사하기 위해 통과해야하는 코딩 테스트 문제들을 풀어본다고 해서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었기 때문에 계속 참여하게 되었다.   

 

8월. 코로나 2차 대유행이 있었다. Spring 강의를 4일인가 듣고 학원은 3주 휴강에 들어갔다. 이럴수가... 학원 측에선 무료 인터넷 강좌를 제공하고, 9월에 열리는 비대면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해준다 하였다. 띠로리... 2020년은 코로나에 대한 언급없이는 얘기할 수 없는 해가 되었다. 스터디를 제외하곤 집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고, 정보처리기사 시험이 막바지여서 새벽까지 수제비 카페에 있는 문제를 풀고 정리했었다. 필기는 그렇게 어렵진 않아 예상보다 높은 점수로 합격했다.

알고리즘을 준비하면서 코딩 테스트를 준비하고 2개월 동안 학원에서 Spring 팀 프로젝트 포트폴리오를 완성시켜 코딩 테스트 실력은 준비되지 않았겠지만 2021년 상반기부터 채용시장에 나가봐야지 라는 계산이 섰다. 

 

9월. 비대면 Spring 강좌가 9월 중순 시작이라 한동안은 백준 알고리즘 문제만 주구장창 풀면서 Spring 강의를 복습했다. 추석은 코로나에게 뺏겼고 집에만 있었다. 비대면 강좌는 최.악.이었다. 물론 강의질이 아니라 내 의지때문에. 강의를 듣는다면 현장강의를 들어야한다. 특히 나같이 혼자있을 때 의지가 약해지는 타입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내가 꽤나 기대했던 Spring 강의는 절반 가량 밖에 습득하지 못했다. 강의 방식은 2개 미니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Spring 개념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이었는데 12월인 지금 만들고 있는 웹사이트 프로젝트에 약간씩 도움을 주고있다. 

 

10월. 알고리즘 스터디를 쉬어가기로 했다. 아직 재학중인 팀원들이 있어서 한달쉬고 11월에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시작하지 않았다. 다들 바쁜 것 같다. 다른 알고리즘 스터디를 들었다. 카톡으로 진행되는 곳인데 난이도가 훨씬 높은 문제들을 이 사람들은 풀어낸다. 대단하다... 

한글날 연휴에 어머니와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항상 제주도 = 바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숲, 오름들을 가보면서 새로운 제주도 면모를 감상할 수 있어 좋았던 여행이었다. 다녀와서 생활을 정비할 힘이 생겼다고 하나? 어지럽던 머리 속과 주변을 정리할 수 있었다.

Spring강의가 끝났다. 비대면 강의는 다신 듣지 않을테다. 집중하지 않은 날들이 더 많았고 100% 배우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리고 원래 계획대로라면 11월부터 2개월짜리 팀 프로젝트 강좌를 들어야했지만 환불을 받았다. 이유는 애초부터 내가 관심있던 앱으로 서비스를 만들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비대면 강의를 들으면서 처음보다 열의가 식었다는 것을 느껴 초심을 되찾고자 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학원의 한계를 느낀것도 있었다. 결국 내가 무엇을 배우고 어떤 것들을 준비해서 개발자가 될 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학원에 의존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어 보였다. Spring을 배웠으니 웹사이트 하나, Kotlin으로 앱 하나를 만들고 싶었다.

원래 정보처리기사 실기시험이 10월 말 예정이었는데 난이도 높아진 알고리즘과 Spring 비대면 강좌를 들으면서 공부할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11월 말 시험으로 연기했다.

 

11월. 현재 시점: 2020년이 15분 밖에 남지 않았다. 

때마침 같은 시기에 개발자를 준비하고 있는 사촌형이 있어 10월부터 주 1회씩 만나 서로의 준비과정들이나 프로젝트 진행사항들을 공유하며 남는 시간엔 각자 코딩하는 스터디를 시작했다. 친구 중에 개발 관련된 일이나 공부를 하는 친구가 없어 사촌 형이 유일한 동료가 되주고 있다. 스터디는 11월 말에 있는 정보처리기사 실기 시험과 코로나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면서 중단 되었지만 여건이 될 때마다 만나서 진행하고 있다.

실기 시험 준비는 필기보다 훨씬 힘에 부쳤다. 일단 주관식, 서술식이란 점에서 그랬고 프로그래밍 언어 챕터의 SQL 내 그룹함수나 Python이 생소했기에 걱정이 되었다. 이 때 무중력지대란 서울시 무료제공 청년공간에서 2주간 꽤 열심히 공부했는데, 필기 공부하면서 생긴 나름의 전략으로 교재 1회독 후 수제비 카페를 매일 들락거리며 정보처리기사 실기관련 거의 모든 문제를 2번씩 풀었다. 막상 시험은 너무나도 어려웠고, 나로선 최선을 다한만큼 더이상 준비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시험장에서 가까운 도봉산을 중턱까지 올랐다가 내려왔다.

 

12월. 현재 시점: 2021년이 임박했다.

Salle라는 중고거래 웹 서비스를 포트폴리오용, Spring 복습용해서 만들고 있다. 작업하면서 기능 구현에 성공해 쾌재를 부르는 날은 1주일 중 1일 정도고 모든 시간을 에러에 허덕이지만, 그래도 점점 원하던 기능들이 구현되어가고 있다. 애초 계획했던 기간의 2배로 조정해(2개월) 이제 절반에 다다랐다. 프로젝트를 만들면서 FE(Front-End)쪽도 알게 되고 서버에 어떤 방식으로 데이터가 전달받고 줘야되는지, 얼마나 많고 사소한 에러들이 발생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고, 지금도 배우고 있다.

그리고 오늘. 정보처리기사 실기 결과를 확인했다. 믿을 수 없게도 난 정보처리기사 자격증에 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