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국토종주] 난항(이화령 고개) (2)

2020. 9. 26. 23:35문화, 예술, 스포츠, 경제/자전거

이튿 날이 밝았다. 코로나 때문에 리조트 조식은 뷔페가 아닌 미역국 정식으로 진행된다고 했다. 8천원에. 짐싸서 내려오는 길에 사진을 한 장 찍고 근처 백반집에 들렸다. 순두부찌개를 먹었던 것 같은데 나쁘지 않았다. 

어제 새벽 1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했던터라 아침까지 잘 수 밖에 없었다. 출발할 때 이미 햇볕이 따갑게 느껴졌다. 2일차 코스는 충주 - 수안보 - 이화령 고개 - 문경 - 상주 였는데 숙소는 상주 자전거 민박이라고 아마 국토종주 하신 분들은 한 번쯤은 들어보는 상당한 명소다. 개인적으로 기대와 달랐던 점도 있었지만...

확실히 하루가 지나고 나니 피로가 쌓였다. 아무렇지 않던 무릎이 출발한지 30분이 채 안되어 아파왔다. 첫 번째 목적지는 충주 탄금대였다. 그 날 날씨가 맑고 정말 좋았던 게 기억난다. 인증 도장을 찍고 수안보로 향했다. 국토종주 하다보면 웬만해선 코스가 같기 때문에 속도 차이가 있어도 동선 겹침이 잦은 라이더들이 생긴다. 우리도 한 분이랑 계속 겹쳤는데 내가 너무 느려서 헤어졌다가 나중에 다른 지점에서 펑크가 났는지 수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밤에 같은 숙소에서 만났다ㅋㅋㅋ 매순간이 힘들어서 살가운 인사는 못나눴지만 종주하다보면 이런 인연들이 생기는 것 같다.

수안보로 가는 길은 더웠고 중간에 석호랑 잠시 나눈 주식얘기, 쉬면서 내 자전거 달리는 속도가 느리냐고 물어보니까 진심으로 느리다고 해서 약간 가슴 아팠던ㅋㅋㅋ 순간만 떠오른다. 왜 이것밖에 안떠오르냐하면 이 날 소조령, 이화령 고개를 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나는 오르막길 때 힘이 부쳐 끌바(바이크를 타지않고 끌고 가는 걸 끌바라고 부른다) 해야했기 때문에 미치는 줄 알았다. 

오후 2-3시 경에 수안보에 도착했다. 온천을 못해서 아쉬웠지만 괜찮았다. 온천이 중요한 게 아니어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사람은 열악한 상황에 쳐하면 기대심리가 낮아진다. 단지 오늘은 어제처럼 새벽 1시에 꼬질한 모습으로 숙소에 들어가기 싫었다. 밤 10시 전에는 무조건 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싶은 심정 뿐이었다. 

수안보는 온천빼고 작은 읍내 같이 단촐한 곳이였다. 행정 상으로도 '충주시 수안보면'이니, 그렇다. 칼국수 맛집이 있었는데 주인 할머니가 손주를 만나시고 안경점을 들려야 해 30분 넘어 돌아온다고 하셨다. 시간이 귀중했기에 옆집에서 같은 메뉴를 시켰다. 칼국수는 그저 그랬다. 물을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 사장님 두 분은 부부셨는데 남편 분이 낙동강까지 종주하고 있다는 우리 말을 듣고 조금 안가서 있는 소조령, 그리고 이화령 넘으면 6-7시 정도 될 거라고 하시며 '소조령'도 오르기 힘들다고 말하셨다. 사실 그때까지 소조령이 있는 지 몰랐다. 이화령은 워낙 유명하니 유튜브나 지도에서 봤는데 예상에 없던 소조령까지 튀어나왔다. 

오르막길에 자전거를 못 타는 실정이 국토종주 완주를 비웃었다. 하 그래도 하는데까지 하고 포기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해 지기전에 고개를 넘으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했다. 차라리 뛰는 게 나아서 이화령을 넘을 때 뛰다 걷다 반복했다. 그랬더니 또 발목이 아파서 마지막엔 걸어 올랐다. 자전거는 오른편에 있고. 석호는 오르막길도 문제없이 탔기 때문에 앞서 올라갔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고 눈 앞에 이화령 고개 정점을 알리는 터널 구멍이 커져갔다.

그렇게 이화령 터널을 마주했고 죽내사내하며 올라온 고갯길은 장관이 돼 우리 앞에 드러났다. 백두산이라도 오른 것 같았다. 이화령 고개 전망은 장관이다. 산맥이 양옆으로 펼쳐지며 중앙에 까맣게 내려다보이는 깊은 대지는 내려쬐는 볕을 그대로 머금고 있다.

이화령 고개 전망

이화령을 넘었지만 상주 민박까지 갈 길이 아직 멀었다. 이화령을 오른 길이 지루했던 만큼 내려가는 길은 짜릿했다. 이화령을 완전히 넘었을 때 7시가 지났고 문경시에 다다르자 이미 하늘은 깜깜했다. 다행히 민박에서 떨어진 곳도 픽업 차량을 운행한다고 해 문경시 점촌동 시외버스 터미널 앞에서 9시 40분?까지 만나기로 했다. 

1일차 때 겪은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밤이 깊어질수록 추워져 라이딩이 힘들어진다. 해가 진 후 문경까지 휴식을 줄이고 페달만 밟았다. 경로도 도심을 가로지르는 길이라 지친 몸뚱아리 빼곤 상황이 괜찮았다. 문경시 초입에서 가로수 조명이 예뻤던 어느 길과 차가 한 대 없어 까마득했던 U자형 국도가 생각난다. 점촌으로 접어들면서 시골길이 나왔다. 다왔다 생각하고 지도를 계속 쳐다보니 더 멀어보였다. 지도를 보지 않고 타는 게 마음은 더 편하다. 날씨는 추워져갔다.

얼마남지 않았기에 걱정이 되진 않았다. 점촌에 도착하니 도심의 불빛이 오랜만에 마을을 만난듯한 따뜻함을 주었다. 역전 편의점에 들려 컵라면과 맥주를 샀다.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나에 대한 보상으로 먹을 게 없었지만 뭐라도 사고 싶었다.

소심한 나는 픽업시간에 늦을까봐 나름 가슴을 졸이며 딱 맞게 도착했는데 픽업 차량은 1시간 가량 늦게 왔다. 택시 정류장 벤치에 앉아 추워지는데 과자 같은 거 먹으며 처량하게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의 노여움과 추움이 지금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도착하신 분은 사장님 남편의 동생이신 것 같았다. 오는 길에 혼선이 있어 많이 늦었다고 하시며 미안해 하셨다. 일단 몸을 앉힐 수단이 생겨 약간의 원망은 오래 가지 않았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가는 길이 시골 비포장 도로였는데 운전을 얼마나 난폭하게 하셨냐면 도착할 때까지 내 목숨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그리고 중간에 시골길에서 후진하다가 방지턱에 트럭 뒷부분을 살짝 박았다. 하지만 지금 내 삶이 더 중요했고 괜찮기만 하다면 굳이 말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당장의 편의만 신경쓸 수 밖에 없었다.

민박집에 도착했다. 가장 기대했던 것은 식사였다. 방송도 탄 집이라 '연예인이 추천하는 맛집 자전거 민박'이란 타이틀은 기대감을 부풀게 했지만 그 날 식단은 대실망이었다. 김치찌개에는 고기나 참치없이 어묵이 들어가 있었고 계란후라이에 계란 장조림이 있었다. 블로그나 방송을 봤을 땐 식단에 고기 반찬이 있어 풍족하게 먹을 수 있다는 평이었는데 육고기 하나 없었다. 혹시 늦게 도착해 반찬이 떨어졌나?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반찬 밸런스와 다음 날 아침으로 유추해볼 때 가능성은 낮았다.

식사에 대한 평을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쓰는 이유는 끼니를 거르고 종주하다보면 하루를 마감할 때 마음편히 먹는 저녁식사가 정말 소중하다. 종주에 대한 꿀팁들을 얻을 수 있어서 선택한 면도 있지만 사실 식사 부분도 컸다. 우리가 갔을 때만 그랬을수도 있지만 내가 느낀 식사 경험은 이렇다.

컵라면은 끓여 먹지 않았다. 피곤에 뻗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이틀 째 미지근한 물로만 샤워한 채로 잠에 들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상주 자전거 민박은 주인 사장님의 자전거 정보와 오랫동안 자전거 라이더들을 묵게 하시며 얻은 귀한 팁들을 나눠주기 때문에 방문해볼 만하다. 나도 사장님 도움을 받아 배낭을 집으로 부치고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단, 뜨겁지 않은 샤워와 육고기 단백질을 포기해야될 수도 있다는 리스크를 받아들인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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