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국토종주] - 출발 (1)

2020. 9. 9. 01:14문화, 예술, 스포츠, 경제/자전거

#자전거 국토종주 #인천~구미 #2020년 5월 12일 (화) ~ 5월 14일 (목)

1. 오아시스

12일 화요일 호기롭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자전거 종주길에 올랐다. 인천 아라뱃길부터 시작해 부산 낙동강 하굿둑까지 이어지는 자전거 종주길은 600km. 석호는 속도가 빨랐지만 나는 느렸고, 배낭 무게 때문에 50km 지점부터 앓는 소리가 나왔다. 광나루 지점에서 스니커즈를 귀한 음식처럼 먹고 팔당대교 까지 갔다.

하남에서 팔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좋았다. 강과 길 사이에 우거진 나무와 풀의 색깔이 봄에 잘 어울렸다. 하지만 놓여진 길은 가혹했다. 수평선만큼이나 끝없는 길이 었다. 여차해서 정신줄을 놓을뻔 했으나 여차저차해서 팔당댐을 지나 양평 부근까지 도착했다. 목이 말라 길목 편의점에 들렸는데 야외 자전거 수리점과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음료수만 사고 갈랬는데 석호가 주인 할머니한테 라면값을 물어보더니 라면 두개를 시켰다. 정말 맛있었다. 그땐 몰랐겠지, 이 곳이 오아시스인걸. 힘들게 일하고 먹는 건 뭐든지 최상의 맛을 낸다. 라면을 때리고 타이어 뒷바퀴 바람이 적은 듯해 옆에 있는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사장님한테 공기압 좀 재어 달라고 청했다. 흔쾌히 자전거를 걸이에 올려놓으시더니 타이어를 만져보며 공기가 적다며 공기를 주입해야겠다고 하셨다. 값을 치르기 위해 얼마인지 물어봤다. 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값을 치르기 위해 항상 물어본다. 이 사장님은 아 이런걸 왜 받느냐면서 공짜로 공기를 넣어주셨다. 감사한 마음에 커피를 드렸다. 가기 전에 석호 짐받이에 고정할 수 있는 줄이 없어 사려고 했는데 돈도 안받고 그냥 주시면서 꼼꼼히 매는 법을 알려주시기까지 했다.

더운 여름 초입에 뭣도 모르고 낙동강까지 가겠다고 돌덩이 같은 가방을 매고 서있는 나에게 사막에 오아시스 같았던 휴게소였다.

석호가 내가 가방을 무거워하는걸 알고 짐받이 고정 줄도 얻었으니 무거운 짐을 자기 가방에 넣겠다고 했다. 석호도 힘들텐데 나서서 챙겨주는 모습이 친구로서 참 고맙고 힘들어 죽겠는 여행 초반에 존경심이 생길 정도였다. 내가 먼저 말 꺼내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래서 더 고마웠다. 이 친구는 여행내내 고마웠다.

2. 기억에 담겨있는 곳곳의 풍경들과 지는 해

양평 두물머리에 들려 연잎 핫도그를 때리고 여주를 향해 달렸다. 양평은 남북으로 길게 뻗은 도시란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하긴 걷거나 자전거로 다닐 일이 있지 않으면 모른다. 양평군 미술관?을 지날 때쯤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목적지 충추 켄싱턴 리조트까지는 한참 남았었다. 자전거 핸들에 올린 팔은 몸과 배낭을 지탱하느라 저려왔고 자세가 잘못 됐는지 무릎과 골반이 아파 기어를 낮춰 가야했다. 즉 오르막길이 나올 때마다 내려서 끌었고(끌바했고) 자주 쉬었다. 속도가 너무 느렸고 나를 과신했다. 

여주까지 가는 길에 참 예뻤던 풍경이 기억나는데 지금 지도로 찾아보니 이포보 오토 캠핑장 ~ 남한강 대교 부근이었던 것 같다. 해가 지는 시간에 잘 맞춰 볼 수 있었던 지평선에 펼쳐진 강과 푸른 잔디를 비춘 석양의 오렌지빛 하늘은 지금도 감상에 잠기게 한다. 여주보를 건넜을 때 이미 해는 졌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숙소까지 아직 46km가 남아있었다. 여주시내에 들어서자 완연한 밤이 찾아왔다. 라이트 장비가 없었던 우리는 특히 나는 여주시내에서 자야될 것 같았지만 이미 숙소를 예약했기 때문에 그리고 석호가 끝까지 가자고 괜찮다고 했기 때문에 끝을 보기로 했다. 뒤에 나올 상황들은 상상도 못했지. 

3. 암흑 라이딩...

여주시내를 벗어나자 남한강 자전거길은 늪으로 향했고 가로등이 있는 곳보다 없는 지점이 늘어났다. 무엇보다 자정을 향해가는 시간이 체력은 바닥났고 기온까지 내려서 최악의 상황임을 알렸다. 진짜 늪지대 같은 길을 불빛하나 없이 폰 후레쉬 두 개에 의지해 지나갔었는데, 들짐승이 푸다닥 하는 소리까지 들려 정신까지 극도로 예민해진 상황에서 라이딩을 버텼던 게 기억에 남는다. 

야영지 같은 곳도 지났던 것 같은데, 공원에 캠핑하는 사람 하나없이 깜깜한 곳을 지나야했다. 빛이 하나도 없으니 공원이 그렇게 무섭더라. 가다가 캠핑온 2팀 정도 본 것 같은데 불도 없이 지나가는 것 같아서 인기척이 들면 혼자 깜짝 놀라며 페달을 밟았다.

자정이 다되갈 무렵 농촌 자전거길 중간에 있던 땅이 꺼진 벤치에서 잠시 쉬었다. 발 빠질 뻔 했다. 군대 제대하고 나서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 우리는 유일한 행복한 생각인 숙소에 도착했을 때, 치킨과 맥주로 이 개고생에 대해 보상하고 싶었다. 추웠다. 리조트 주변 치킨집들에 전화하니 11시면 다 닫는다 했다. 그렇다. 우리가 달려가는 켄싱턴 리조트는 도심과 떨어진 곳이었다. 치킨은 고사하고 열려있는 편의점도 없었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었다. 몸이 괜찮다가도 괜찮지 못했다. 그럴 땐 진짜 울 수도 없고 뭐라고 해야되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 뿐이었다. 아 그리고 다치면 안된다는 생각도 계속 했던 것 같다.

비내섬 인증센터를 지나면 거의 다 온 거라서 비내섬이 나오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며 달렸는데 상당히 긴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그  때 "진짜 죽으란 법은 없구나." 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하늘이 내가 자청해서 자전거를 타고 무거운 배낭을 매고 하루에 167km를 달린다고 나와서 자정을 지난 지금도 길바닥을 달리고 있지만 객사하게 내버려 두진 않겠구나. 아무리 힘들어도 죽진 않겠다라는 작은 깨달음을 얻었던 내리막이었다. 

4. 불꺼진 도시 가파른 리조트

리조트 위치가 충주와 양성에 걸쳐 있었는데 양성이 한우로 유명했다. 자정이 넘었기 때문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특산물이었다. 숙소 근처까지 개 한마리도 짖지 않고 열린 가게는 한 군데도 없었다. 그나마 찜질방이 있었는데 양해를 구하고 매점만 이용할 수 있기를 청했다. 친절한 아주머니께서 가능하다고 했다. 안에서 석호가 신라면 작은 컵이 쌓여있던 걸 모르고 쓰러뜨려 당황했던 게 갑자기 생각난다 키키키. 나의 개그코드는 이상해. 먹을 것들을 쓸어담았지만 과자, 계란, 신라면, 음료수 였고 단백질은 그나마 노란색에 빨간띠 두른 소세지 뿐이었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미쳤을거지만 치킨을 기대했기에 매우 실망스러웠다.

리조트가 시야에 들어왔는데... 무슨 산 꼭대기에 있었다. 아닐거야... 아닐거야... 하지만 맞았다. 경사가 내가 구미까지 국토종주하면서 본 길보다 아니 내가 가본 그 어느 숙소보다 가팔랐다. 충주 켄싱턴 리조트에 가본 분들은 알거다. 미친 경사가 또 길다. 욕 밖에 안나온다. 리조트에 전화했지만 새벽 1시가 다되어서 교대해줄 사람도 없고 차도 없고 그냥 자전거 끌바해서 올라가야했다.

게임 끝판왕을 깼는데 그게 끝판왕이 아닌 백만볼트 좌절감과 초전박살난 몸뚱아리가 측은했다. 

숙소에 도착했다. 로비가 생각보다 깨끗하고 급이 높았다. 근데ㅋㅋㅋㅋㅋㅋ 방으로 올라갔는데 현관 문 손잡이가 실물 열쇠를 넣고 돌려 여는 구조였다. 주방도 구렸고 뜨거운 물이 잘 나오지 않아 찝찝해서 샤워했다. 뭐 하나 예상대로인 것이 없었다. 새벽 1시에 프링글스나 입에 쑤셔 넣으면서 하루를 마무리 할줄 몰랐다. 그리고 더한 내일이 기다리고 있음을 예감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비몽사몽 정신으로 어떻게 도착은 했다. 다치지 않고, 무사히 잠들 수 있었다는 게 기적이다. 절대 무거운 배낭을 매거나 빠듯한 숙소 선 예약은 하지 않기를 적극 권장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하루가 끝난 것만으로도 감사한 새벽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