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 삶과 죽음 사이의 복잡성과 단순성

2020. 9. 20. 11:34문화, 예술, 스포츠, 경제/책

두 달 전 김훈 작가가 라디오에 나와서 새로 쓴 책 얘기 하는 것을 듣고 구입했다가 오늘에서야 다 읽고 리뷰를 남긴다.
어린 시절부터 인간 외 동식물을 통틀어 '말'을 제일 좋아했다. 주말 영화나 애니매이션 주인공이 먼 곳의 지평선을 향해 말과 한 몸이 되어 달리는 모습이 자유로워 보였고 또다른 생명체의 등에 타서 이동한다는 점이 신기했다. 훗날 말 목장 주인이 될 거라는 꿈도 꿨었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을 읽으면 흡사 말이 된 느낌을 받는다. 말의 관점에서 서술한 부분의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이 아닌 말로 세상을 보는 것 같아 좋았다. 나오는 대상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하고 쓴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야백은 집들의 울타리 너머로 빨래를 들여다보았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옷을 입고 사는 인간의 운명에 야백은 미소 지었다. 몸통 위에 천을 한 겹 걸치는 그 답답함을 야백은 가엽게, 그리고 어여쁘게 여겼다. 젊은 농부의 집 마당의 빨랫줄에 널린 어린아이 옷은 죽은 아이가 입던 옷이 아닌가 싶어서 야백은 눈을 돌렸다." - 본문 중
야백은 달릴 때 힘이 솟구쳐 핏줄이 밖으로 터진다하여 비혈마로 불리우는 종이다. 사람의 말로 치면 특등품 종마다. 인용 구절 같이 말의 시선은 생각의 결이 순수하고 깊이가 있어 재밌다.
책 리뷰는 길게 쓰기 싫기 때문에 지금 기억에 남는 부분만 정리해 쓰고 마무리 해야겠다.
책은 반대되는 문화, 습성, 전통, 통치를 가진 국가 단과 초의 이야기이며 비혈마 수말 야백과 신월마 암말 토하의 서사다. 소설 흐름의 중심에는 존망과 생사가 자리한다. 세상 만물의 이야기는 생과 사 사이에 벌어지며 존과 망 사이의 일밖에 쓸 수 없지만 끊임없이 이어진다. 내가 살고 있을 때까진 무한히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간 죽음이 온다.
인간은 저마다 목적을 가지고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소수이다. 말은 태어나서 초원의 풀을 뜯어먹고 이슬로 목을 축이며 달린다. 인간에 의해 길러져 가축이 된 말은 인간의 목적에 따라 사용된다. 그러다 노쇠하거나 병이 생기면 버려진다. 대부분 버려진 말들은 기력이 약해지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말들은 이런 삶을 부정하지도 긍정하지도 않는다. 네 발로 딛는 길에서 피부와 코로 느끼고 맡아가며 세상을 관찰한다. 
표는 선왕이 돈물(늙어 기력이 약해지면 스스로 뗏목에 몸을 실어 나하 하류로 명멸하는 초나라 풍습. 고려장과 유사하지만 모든 것을 본인이 한다는 점이 다름)하기 전에 남긴 명을 이루기 위해 산다. 반면 동생 연은 백산(白山)에 들어가 인간이 아닌 자의 말을 쓰며 벌레와 짐승을 따라하는 야인이 된다.
복잡 미묘한 사회에서 이분법이란 통하지 않는 단순한 이치이다. 하지만 어떤 색으로 살지 정하려면 양 극단에 있는 성질을 살펴봐야한다. 가끔은 내쉬는 숨과 딛는 땅을 느끼며 살고 강을 건널 수 없는 몸이 되어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