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8. 1. 23:11ㆍ카테고리 없음
이 글은 다녀온 지 약 2달 반이 되어가는 인천 → 구미까지 자전거 종주에 대한 후기이다.
왜 이렇게 늦어서 올리냐고?
그간 시간이 없이 바빴다. 귀찮아서..
05/12/20
Day #1
12일 화요일 호기롭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자전거 종주길에 올랐다.
인천 아라뱃길부터 시작해 부산 낙동강 하굿둑까지 이어지는 자전거 종주길은 600KM 였다.
석호는 속도가 빨랐지만 나는 느렸고, 배낭 무게 때문에 50KM 지점부터 앓는 소리가 나왔다.
광나루 지점에서 스니커즈를 귀한 음식처럼 먹고 팔당대교 까지 갔다.
하남에서 팔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좋았다. 강과 길 사이에 우거진 나무와 풀의 색깔이 봄에 잘 어울렸다.
하지만 놓여진 길은 가혹했다. 수평선만큼이나 끝없는 길이 었다.
여차해서 정신줄을 놓을뻔 했으나 여차저차해서 팔당댐을 지나 양평 부근까지 도착했다.
목이 말라 길목 편의점에 들렸는데 야외 자전거 수리점과 함께 운영하고 있는 듯 했다.
음료수만 사고 갈랬는데 석호가 주인 할머니한테 라면값을 물어보더니 라면 두개를 시켜 먹게됐다.
그땐 몰랐겠지 이 곳이 오아시스 일 줄. 힘들게 일하고 먹는 건 뭐든지 최상의 맛을 낸다.
라면을 때리고 타이어 뒷바퀴 바람이 적은 듯해 옆에 있는 자전거 수리점에 가서 사장님한테 공기압 좀 재어 달라고 청했다. 흔쾌히 자전거를 걸이에 올려놓으시더니 타이어를 만져보며 공기가 적다며 공기를 주입해야겠다고 하셨다.
값을 안 치르려고 물은 게 아니라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값을 치르기 위해 항상 물어본다.
이 사장님은 아 이런걸 왜 받느냐면서 공짜로 공기를 넣어주셨다. 감사한 마음에 커피를 드렸다.
가기 전에 석호 짐받이에 고정할 수 있는 줄이 없어 사려고 했는데 돈도 안받고 그냥 주시면서 꼼꼼히 매는 법을 알려주시기까지 했다.
더운 여름 초입에 뭣도 모르고 낙동강까지 가겠다고 돌덩이 같은 가방을 매고 서있는 청년에게 사막에 오아시스 같았던 휴게소였다.
석호가 내가 가방을 무거워하는걸 알고 짐받이 고정 줄도 얻었으니 무거운 짐을 자기 가방에 넣겠다고 했다.
석호도 힘들텐데 나서서 챙겨주는 모습이 친구로서 참 고맙고 여행길 팀원으로서 리더에 대한 존경심이 생길 정도였다. 내가 먼저 말 꺼내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래서 더 고마웠다.
이 친구는 여행내내 고마웠다.
양평은 남북으로 길쭉한 도시였다. 페달을 밟고 또 밟아도 양평을 벗어나지 못했다.
차츰차츰 구름이 끼더니 비가 오기 시작했다. 내 가방은 커버가 있지만 석호는 그렇지 못해 비닐로 가방을 감싸고 달렸다. 국토종주 인증센터가 나올 때마다 환희와 아픔이 공존했다. 허벅지는 아프지 않았다. 가방 무게 때문에 손목, 팔, 무릎 그리고 골반이 아팠다.
여주를 지나면서부터 점차 어두워져갔다. 어두워지기 전 봤던 노을진 파스텔 빛 보라색 하늘은 잊지 못한다.
충주까지 가려면 많이 남았는데 여주시내에 도착했을 땐 이미 앞은 깜깜했고 가로등 없이 10m 전방을 보기 힘들었다.
1,2일 숙박은 미리 예약을 해둬서 취소하고 다른 곳에서 묵기가 애매했다.
다음 번에는 절대 숙소는 미리 예약하지 않고 당일 오후 지나서 해야지라는 뼈아픈 교훈을 배웠다.
충주로 들어가는 길은 늪지대, 가로등 불빛없는 시골길이 었다. 심지어 11시가 넘어가자 기온이 내려가 추워졌다.
20km 정도 남았을 때 정자에서 쉬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난 완전히 뻗어서 누웠고 석호는 치킨이 땡긴다고 했다. 충주 켄싱턴 리조트에 전화해보았지만 알려준 치킨집은 모두 닫았었다. 주변이 자연 관광지라 일찍 닫고 퇴근하는듯 했다.
기다리는 건 암흑 속의 어딘가에 있는 따뜻한 샤워와 포근한 침대였다.
치킨도, 눈에 보이는 뭔가도 없었지만 살기 위해 도착해야만 했다.
다와가는 듯했지만 다가오지 않던 리조트는 새벽 1시가 돼서야 도착했다.
석호가 나때문에 너무 고생해서 미안했다.
켄싱턴 리조트 올라가는 길이 미친 오르막이다. 스키장을 가봤다면 경사가 거의 고급 난이도 코스 경사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새벽 1시에 욕을 한바가지 하면서 올라갔고, 켄싱턴 리조트에 입성했다.
눈물 겨운 자전거 종주의 첫 날은 이렇게 마무리 됐다.